4인 가족 중 아버지인 고인이 죽기 전, 10억의 자산을 자녀들 중 한 명에게만 다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죽었다고 생각해보자. 그 유언은 무조건적으로 지켜지는 걸까?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1977년 제정된 ‘상속유류분청구반환소송‘이 고인의 유언보다도 우선적으로 발동한다. (‘구하라법’과 관련된 기여분은 엄연히 유류분과 다른 별개의 법이며, 둘 중 적용되는 법의 우선순위는 유류분이다.)
유류분이란 상속인이 법률상 반드시 취득하도록 보장되어 있는 상속재산의 가액을 말한다. 직계존속과 직계비속의 자세한 유류분 비율은 민법 제 1112조에 기술되어 있다. 유류분이 만들어진 이유는 유족 구제이다. 초기 민법이 제정되던 시절, 고인의 유언이 절대적으로 지켜지던 시절에는 유산을 몰아 받으면 인생 역전도 노려볼 수 있었지만, 옛날의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으로 대부분의 경우는 아들에게만 상속되었다. 그로인해 남은 다른 유족들의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정된 법이다.
하지만 1977년 이후로 46년간 단 한 번도 개정 된 적 없기에, 권리의식이 커진 시민들에게서 ‘재산권 침해’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의 유류분 제도가 ‘위헌’이라는 것이다. 실제 유류분 제도 자체가 위헌인지 판단해 달라며 올라온 사건이 40여 건에 이른다. 고인의 개인적인 재산을 어떻게 쓰든 자유인데 유류분 제도가 이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옛날만큼의 장남 우선 관행은 대부분 사라졌고, 생전 고인에게 불효, 불화로 사이가 무척 나빠 상속받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자녀의 무조건적인 상속권까지 보장해주는 것이 유류분 제도이기 때문이다.
불효자라도 당당히 재산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고 해서 불효자 상속권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는 유류분, 하지만 이 문제가 ‘상속결격사유’(상속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너무 좁게 구성되어 있어 그렇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유류분의 상속결격사유는 고인을 살해하거나 유언을 위조한 경우 등 아주 극단적인 경우로만 구성되어 있다.
로스쿨 교수들, 국회의원들까지 계속 의견이 갈리는 상황에서 헌재(이하 헌법재판소)는 위헌성 여부를 놓고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 공개변론의 의미가 헌재의 태도 변화를 예고하는 절차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인데, 4월 초 유류분 권리를 없앤다는 내용을 담은 법률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앞으로의 변화가 더욱 주목되고 있다.
전진아 | 2023-06-03 22:4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