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외교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갈등 중 하나는 역사 왜곡이다. 특히, 일본의 교과서 역사 왜곡은 한국과 주변국과의 외교 갈등을 심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청소년의 올바른 역사관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일본의 교과서 왜곡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교과서 역사 왜곡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은 1, 2차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1차 사건은 1950년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우익 세력들이 집권하고 있던 행정부(문부과학성, 이하 문부성)는 교과서에서 일본에 불리한 내용을 검멸하는 교과서 검정 기준을 강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특히 근•현대사가 많이 왜곡되었는데, ‘태평양 전쟁’을 ‘대동아 전쟁’, 중국 ‘침략’을 ‘대륙 진출’로 기술하는 등 많은 표현을 완곡히 표현하거나 기술하지 않았다.
1980년대 일어난 2차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은 1982년, 1987년 이후 사용될 예정이었던 초•중•고 역사 교과서에서 한국의 고대, 중사, 근대, 현대사가 왜곡되었고 특히 현대사 부분은 가장 심하게 왜곡되었다. 한국 ‘침략’을 ‘진출’로, 토지 약탈을 ‘토지 소유권’ 확인 등으로 왜곡 기술하였다. 당시 국사 편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 16종 중 24개 항목, 167군데가 심각하게 왜곡된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이에 대해 한국과 중국은 강경하게 항의하였고 이 문제는 국제적인 논란이 되었다. 한일, 중일 간 갈등이 점차 심화하자 일본 정부는 주변국을 의식한 ‘근린 제국조항’이라는 새로운 교과서 검정 기준을 만들었다. 이후 교과서는 점차 개선되었다.
하지만 2002년, 2차 왜곡 사건 이후 잠잠해졌던 일본의 교과서 역사 왜곡 논란이 다시금 불거졌다. 일본의 문부성은 역사 왜곡을 포함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려 했고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수정을 요청했지만, 일본은 이를 거부했다. 자국 중심적으로 편향된 서술과 ‘일본이 황인종을 대표’한다는 등의 인종주의적 내용 등의 역사 왜곡으로 한국과 중국에서 크게 반발하였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본 교과서들은 저조한 채택률을 보였다. 이는 국제적 반발의 영향도 있지만 일본 사회 내에서의 의식 변화 또한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역사 왜곡이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문부성의 교과서 검정 기준의 주요 원칙 중 하나인 교과서와 정부의 견해가 일치해야 한다는 내용에 있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일본의 사회과 교과서(지리•역사 등) 왜곡으로 인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3월 20일 공개한 ‘2022 국가별 인권 보고서’ 일본 관련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다루며 “역사 교과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검정은 여전히 논란이 많은 사안”이라고 밝혔다[출처:경향신문].
지난 3월 교육부가 발표한 문부성의 교과서 검정 결과에는 일본 중학교 역사 교과서 8종에서 1940년대 조선인 노동력 동원에 ‘강제 연행’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특히 조선인 강제 동원, ‘위안부’ 등 기술을 피하는 모습도 보였다. 또한, 독도에 대해서 일본의 ‘고유 영토’ 라고 기술한 교과서는 모두 16종으로 전체 89%에 달했다. 독도 뿐만 아니라 동해를 ‘일본해’라고 하는 등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역사 왜곡이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지난 3월 22일 교육부는 역사를 왜곡 기술한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 통과시킨 것에 강력히 항의하며, "일본 정부는 역사 왜곡을 즉각 시정하라"는 입장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