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수요일 오전의 카페.

 

그런 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이 출입문만을 응시하고 있는 남자. 그는 무언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생각에 빠졌다.

이게 맞는 선택인지.. 지금이라도 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돌아갈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 그를 위해 답을 던져주듯 카페 문이 열리며 한 여성이 들어왔다.
그가 기다리던 사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말들 속에서 건넬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녀가 원치 않을뿐더러 말할 용기가 안 섰다. 그는 이런 마음을 들킬세라 표정을 감추며 힘겨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게 그녀에게 건넬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 어서 와. 오래간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어? "

그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앞에 앉는 그녀.

' 너무 멀리 앉은 것 같아. 이리로 와. 붙어 앉자. 지금이라도 장난이라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가 밥 먹고 평소처럼 놀자. 어려운 일 아니잖아.. '

그가 바라는 상황과는 거리가 먼 현실. 큰 기대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 그런 표정은 안 짓는 건 어떨까? 싸우려고 온건 아니잖아. 아니면.. 처음처럼 날 대하는 건 어때? 오늘만큼은 말이야. 이제 진짜 마지막이잖아. "

마지막. 제일 말하고 싶지 않았던 말. 하지만 그녀가 가장 원하는 말. 그 말을 하면 잠시나마.. ' 작은 기대를 해봐도 되지 않을까 ' 라는 심정이 들었다.

" 그런 말 들으려고 나온 거 아닌 거 알잖아. 그런 말 할 거면 다음에 만나자. "

인상을 찌푸리는 그녀.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그녀를 보고 그는 손을 잡아 막았다.
너무나도 차가운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네가 나에게서 떠나려고 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넌 오래전부터 우리 끝을 준비해온 것 같았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너무 어려웠는데, 결과는 너무 쉬운 것 같네.
웃음이 나왔다. 너무나도 바보 같은 자신의 모습에..
그리고 다시 한번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잡고 있던 그녀의 왼손 약지에서는 만져지지 않는 결혼반지. 그리고 아직도 자신의 약지에는 끼여져 있는 반지를 통해서 말이다.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의 마음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관계를 이어가려는 그와 그 관계를 끊으려는 그녀. 그는 이제 진짜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녀의 선택을.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자신의 옆에 놓여 있던 서류와 펜을 그녀에게 건네었다. 떨리는 손을 참으며, 애써 괜찮음을 연기했다.

" 여기 펜은 준비돼있어. 난 먼저 다 써놨으니, 이제 너만 사인하면 돼. 그리고 그냥 가면 돼. "

여기 카페에 네가 좋아하는 메뉴가 많아서 찾아봤던 곳이었는데. 우리가 시킨 건 커피 두 잔에.. 이런 상황으로 오게 될 줄은 몰랐네..
깊은 후회감이 온몸을 감쌌다.
망설이면서 서류를 작성했던 그와는 반대로 너무 쉽게 사인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여러 가지 생각을 들었다.
물론 그 생각의 끝에는 모든 게 미련으로 남겨졌다. 그녀는 사인을 마치자 펜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가려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과거에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세상을 다 가진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 그리고 그 웃는 모습이 유난히도 예뻤던 그녀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물론 지금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아무 표정도 없었다. 마치 행복한 꿈을 꾸고 일어난 기분이 들었다.

" 서류는 내가 가져가서 제출할게. 잘 지내. 이제 더 이상 만나지 말자. "
" 그래. 근데 난 잘 지내라고는 못 말할 것 같아. 이해하지? 그래도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아. 그리고 언젠가는 후회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 이게 내 마지막 인사야. "
" 그래. 근데.. 후회? 그건 걱정 마. 그럴 일은 없으니까. "

너무나도 단호한 말투.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카페를 나갔다. 그녀의 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어 보였다. 보였다면 오히려 후련함이 보인달까. 그는 그녀가 나간 한참 후에도 계속해서 문을 쳐다봤다. 혹시나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 때문에..
넌 무슨 심정으로 나에게 끝을 말한 걸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그녀를 위해 끝을 결정했다. 서류에 쓰여 있는 어려운 단어들을 이해했고, 사인도 했다.
넌 모르겠지.. 내가 어떤 감정으로 그 서류에 사인을 했는지를. 수십, 아니 수백 번도 넘게 그 서류를 찢고 싶었다. 지금도 너를 쫓아가 서류를 찢고 싶었다. 하지만.. 참고, 견뎠다. 내가 사랑하는 네가 원하기에 말이다.
그는 한참을 바라보던 문에서 시선을 돌려 그녀가 앉았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참고 있던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로 돌아오지 않을 너를 잊기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기를 ..

**사진출처 : 픽사베이

 

김현지 | 2024-06-03 00: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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